2019년 여름,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난다.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도 보이는 이 개기일식이 우리나라에선 왜 그렇게 보기가 어려운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번 일식은 칠레의 라세레나라는 곳에서 잘 보인다. 이곳은 유명한 관측지로 CTIO라는 여러 국가의 연합 관측지가 있다. 개인적으로 칠레는 세 번 관측을 다녀왔기에 일식을 보러 갈 그 여정이 다소 만만해지게 느껴지긴 한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다녔던 칠레는, 가는 길은 멀고 험할지라도 도착하고 나면 보이는 풍광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깨끗하고 넓은 곳이었다.
인천공항에서 개기일식이 보이는 라세레나 지역까지는 4번의 이착륙(LA에서 출발할 경우 리마를 경유하여 산티아고로 들어간다.)을 겪어야 한다. 여러 루트 중에서도 가장 대기 시간이 짧게 구성된 루트는 “인천 → LA(애틀란타 혹은 달라스) → 산티아고 → 라세레나” 이다.
위 경로에서는 두 나라를 추가로 입국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먼저 LA에서 3~4일 스톱하여 헐리우드, 그리니치 천문대 등의 관광을 즐길 수 있고, 리마에서 멈춰 마추픽추의 신비함을 경험할 수도 있다. 검색을 통해 찾아지는 비행코스 중, 갈 때는 미국으로 들어가서 칠레로 가지만 올 때는 프랑크푸르트를 거처 유럽 쪽으로 돌아오는 비행코스가 있던데, 무척이나 관심이 생기는 루트이다. 어떤 루트를 선택하던 긴 이동 거리 만큼이나 많은 경험을 선택할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지구 중심을 관통하면 아르헨티나가 나온다. 칠레는 바로 그 옆에 있는 나라로 한국에서 가려면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오래 걸리는 나라 중 하나이다. 서울에서 칠레를 왕복하려면 비행일정만(여행일정이 아닌) 6일이 필요하다. 단순한 비행시간으로만 27시간 정도 걸리는 이곳을 가려면 중간에 여러 번 비행기를 바꿔 타야 하고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도 한몫을 한다. 서울에서 여행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 이후 라세레나 관측지 숙소에 가방을 내려놓기까지 최소 42시간! 문제는 떠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제대로 씻지 못한 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7월이면 한국은 한참 더울 여름이지만 칠레는 제일 추울 겨울이 시작된다. 챙길 짐의 절반은 두꺼운 겨울옷이다. (약간의 팁이라면... 출발할 때 긴바지 츄리닝과 얇은 긴 소매 옷을 챙겨 입는 것이 좋다. 비록 한국은 더울지라도 비행기만 뜨면 쌀쌀한 기내에서의 2박3일을 대비해야 하니까... 그리고 츄리닝 바지는 될 수 있으면 한 치수 큰 게 좋겠다.)
여정의 시작, 처음이라면 누구건 여정의 시작이 주는 기대감에 피곤을 모를 것이다. LA까지는 전체 일정의 절반, 아직은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LA에 도착 후 칠레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일은 꽤 빠듯하다. LA 톰 브래들리 국제공항은 언제나 사람이 붐비는 공항으로 새벽에 도착해도 입국심사 한 시간이 우스울 정도로 대기 줄이 매우 길다. 요즘은 어느 정도 자동화되기도 했지만 그게 꼭 빠르지만도 않다. 내가 갔을 때는 갈아탈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2~3시간 남짓 남아있지만 도착해서 공항 밖으로 나가는 데만 1시간 반씩 걸리니 짐은 안 찾고 바로 넘긴다고 하더라도 티켓팅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으로 넓은 공항에서 전력 질주를 해야 간신히 시간을 맞출 정도로 숨 막히는 스케줄이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빠듯한 일정을 잡냐고들 하지만 한국에서 미국을 거쳐 칠레로 내려가는 비행기의 연결 시간은 그리 친절하지 않다. 그 비행기를 보내고 나면 공항에서만 7~8시간을 대기 해야 하거나 다음날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연착이라도 한번 되면 공항 대기 시간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항공기 연착은 외국 항공사에 비하면 정말 우습다.) 언급한 대로 현지에서 보너스처럼 얻어지는 경험을 만들고 싶다면 공항 내에서는 언제나 전력 질주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칠레행 비행기 탑승이 끝나면 한숨 돌리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준비를 하면 된다. 손목시계의 시간을 맞춰가며 날짜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헷갈릴 정도로 계절과 함께 변화한다. 보통 LA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대부분은 페루의 리마를 잠시 경유하여 탑승객을 다시 태운다. LA에서 칠레 항공사가 연결될 경우 기내식은 칠레의 도시락 같은 느낌의 빵과 치즈 샌드위치 같은 것이 제공되는데 맛이 매우 강하다. (너무 짜서 먹고 나면 물을 계속 찾는다.) 한참을 자고 눈을 떠도 도착하지 않는 비행기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LA를 출발하여 약 14~15시간 정도 지나면 칠레의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산티아고에 도착할 즈음이면 중력의 변화를 세포 단위로 감지하는 듯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는다. 마치 초능력자라도 된 느낌이랄까... 비행기에서 쉬는 것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피곤함에 찌들어 다리는 물론 온몸이 퉁퉁 불어 터진 라면 같은 느낌으로 땅바닥에 발을 디디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꼭 땅바닥이 춤추는 것처럼 다리가 발바닥이 어디를 딛는지 모르는 그런 느낌이 든다. 이제 거의 나왔다!
산티아고 공항에서 출국심사를 하고 나오면 국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 바로 국내선으로 이동을 하는데 공항 안이지만 정말 춥다. 칠레는 겨울이니까 어쩔 수 없다. 바로 준비했던 긴소매 옷과 겨울 코트를 꺼내 입고(여기서 감기 걸릴 확률이 가장 높으니 조심해야 한다.) 국내선 쪽으로 이동하여 다시 티켓팅을 하고 짐을 부치면 드디어 마지막 비행만을 남겨두고 한숨 돌릴 시간이 남는다. 세 번의 이륙과 착륙을 겪는 동안 지칠 만큼 지치고 닭장 같은 비행기 안에서 먹고 자고 거의 움직이지도 못한 상태로 2박 3일간 지내고 나면 아무 생각이 안 든다.
국내선 비행은 약 1시간 정도라 이륙을 할 때 ‘이제 마지막이야’라는 생각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참아내려 하지만 하루보다 더 길단 느낌이 들어오는 그 찰라, 라세레나 공항에 도착한다. 착륙 직전의 비행기에서 공항을 내려다보면 정말 여기가 공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담하고 작은 건물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칠레의 휴양지, 남미의 휴양지 등등 아름다운 해변을 두고 있는 라세레나는 매우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여기는 많은 외지인이 찾는다. 왜냐하면, 유명한 관측소인 CTIO와 제미니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한국천문연구원의 망원경도 있다.
안데스 산맥을 등줄기로 지고 있는 칠레는 그 긴 국토 중간 즈음의 곳곳에 관측하기 좋은 여건을 갖춘 지역이 있다. 이곳 라세레나가 위치한 곳은 해변을 제외한 산맥 쪽은 돌과 바위로 되어있는 사막이다. 간혹 있는 나무와 선인장이 가끔 초록색을 볼 수 있게 해줄 뿐 황토색, 흙색의 산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목적인 일식이 잘 보일 만한 장소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CTIO천문대로 올라가는 길은 허가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산 입구의 길목에서 출입통제가 되기 때문에 주변의 다른 장소를 물색해봐야 할 것이다.
힘들게 멀리까지 왔는데 일식만이 볼거리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사막 한가운데서는 일식 말고도 볼거리가 더 있다. 밤이 되면 하늘에서 불이 켜진 듯 은하수와 함께 많은 별이 보인다. 이곳에 관측소가 생기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안데스산맥의 한가운데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자면 내 발밑에 별빛으로 생기는 별그림자를 볼 수 있는 신기한 경험도 함께할 수 있다.
달이 얼마나 밝은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는데, 아쉽게도(?) 일식이 일어나는 즈음에는 달이 밤에 보이지 않아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다. 예전 다른 관측을 갔을 때 하현이 뜬 밤에 운전하는데,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아도 될 만큼의 달의 밝음을 겪으면서 새삼 놀랐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 헤드라이트를 꺼두어도 방향지시등만으로도 다른 관측자에게 미안하리만큼 밝게 비치는 것이 그곳의 어둠이었다.
일식과 그리운 별그림자를 보기 위해, 2박 3일의 비행을 감내하고 다시 칠레로 떠나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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