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굴절망원경 이야기 (3)

스타리랜드 게시물

스페이스타임즈 승인 2018.01.28 02:14 | 최종 수정 2018.05.30 13:44 의견 0

아포크로매트의 정의

아포크로매트(apochromat)란 아크로매트보다 색수차를 더욱 줄인 렌즈를 말하며 줄여서 APO 혹은 아포라고 부른다. 시중에는 다양한 APO 망원경이 나오고 있으며, 저마다 자신들의 렌즈가 아포크로매트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망원경 사이에는 색수차 교정 능력에서 차이가 많으며, 실제 APO 라고 광고하는 망원경들 중에서도 색수차가 꽤 있는 것들이 많다.

원래 에른스트 아베가 처음 정의한 아포크로매트는 "세가지 파장의 빛에서 초점거리가 일치하고, 두 가지 파장의 빛에서 코마 수차 및 구면수차가 제거된 렌즈" 이다. 그러나 이 정의는 너무나 엄격하여 요즘 APO 라고 선전하는 웬만한 렌즈들도 이 정도 성능은 꿈도 못 꾼다.

그래서 대체로 세가지 파장의 빛에서 초점거리가 일치하면 아포크로매트라고 불러 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의하면 색수차 외에 구면수차나 코마 수차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으므로 아포크로매트라고 하여 성능이 더 뛰어나다는 보장이 없다. 색수차는 작지만 구면수차가 많은 아포크로매트도 있을 수 있을 텐데, 이런 망원경은 값만 비싸지 잘 만들어진 아크로매틱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단지 색수차가 작다는 것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성능을 보아야 한다.

한편 아포크로매트보다 색수차 교정능력이 더욱 뛰어난 렌즈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4가지 파장의 빛에서 초점거리가 일치하는 렌즈, 5가지 파장의 빛에서 초점거리가 일치하는 렌즈도 만들수 있다. 전자는 슈퍼 아포크로매트, 후자를 하이퍼 아포크로매트라고 부른다. 이러한 렌즈들은 안시관측보다는 천체사진촬영에 많이 쓰이는데, 사람의 눈은 파장이 짧은 푸른색이나 보라색 빛에 별로 민감하지 않으나 사진 필름은 이 파장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아포크로매틱 망원경으로 천체사진을 찍어 보면 밝은 별 주위에 푸른색의 빛무리가 어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마추어용으로는 슈퍼 아포크로매트에 해당하는 굴절 망원경이 가끔 보이며 하이퍼 아포크로매트는 잘 보이지 않는다.

Pentax 105 SDP

아포크로매틱 망원경의 설계방식

아크로매틱 렌즈의 2차 스펙트럼이 초점거리의 1/2000 정도인데 반해 아포크로매틱은 1/8000 에서 1/10000 이하인 것들이 많다. 아포크로매틱 렌즈를 만들기 위해서는 렌즈 맷수를 늘리거나, 렌즈의 소재를 분산률이 작은 ED 나 SD, 플로라이트로 만들어야 한다.

대체로 2매 아크로매틱 방식에서 렌즈 한 장만 ED 로 바꾼 망원경들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색수차 교정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보그나 빅센의 ED 망원경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은 완전한 아포가 아닌 세미아포크로매트로 불린다. 텔레뷰 프론토나 펜탁스 EDHF 시리즈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2매 중 렌즈 하나를 SD나 플로라이트로 바꾼 망원경들이 좀 더 낫고, 렌즈를 3매로 하고 그 중 한 장 이상에 ED/SD/플로라이트를 사용한 망원경이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인다. 당연히 가격은 뒤로 갈수록 비싸진다.

다카하시 FS 시리즈나 빅센 FL 시리즈는 2매 형식에서 렌즈 한 장을 플로라이트로 바꾼 것이다. 원래 플로라이트는 재질이 워낙 약해서 망원경 전면에 배치할 경우 습기나 스크래치 때문에 손상될 위험이 많다. 그래서 예전에는 플로라이트를 뒷면에 배치한 슈타인하일 방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다카하시 FC 시리즈나 빅센 FL 시리즈는 모두 슈타인하일 방식이다. 그러나 다카하시에서 플로라이트에 코팅을 하는 기술을 개발한 이후 FS 시리즈는 플로라이트를 전면에 배치하는 프라운호퍼 방식으로 바뀌었다. 다카하시에선 FC 시리즈와 FS 시리즈 사이에 성능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많은 사용자들은 FC 시리즈가 성능이 약간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아무리 플로라이트를 쓴다 해도 2매 구성의 아포크로매트는 색수차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으며, 색수차를 극도로 줄이자면 렌즈가 3매 구성이 되어야 한다.

3매 구성의 아포크로매트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아스트로피직스의 굴절 망원경일 것이다. 아스트로피직스는 80년대 초반부터 3매 굴절 망원경을 만들어 왔는데, 초기에는 ED 소재는 아니지만 일반 광학 유리보다는 특성이 좀 좋은 유리로 만든 스타파이어 시리즈를 만들었고, 80년대 후반에는 3매 렌즈 중 하나를 ED로 구성한 EDT 시리즈를 발표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다. 최근에는 SD 소재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정확하지는 않다) EDF 시리즈로 업그레이드하였다.

아스트로피직스의 망원경들은 이 회사의 사장인 롤랜드 크리스텐이 설계한 1군 3매 방식의 대물렌즈를 사용한다. 설계자의 이름을 따서 크리스텐 3매 렌즈 (Christen triplet) 라고 불리는 이 대물렌즈의 특징은 가운데 오목 렌즈를 중심으로 두 볼록 렌즈가 대칭형이라는 것과, 렌즈 사이에 오일을 채워넣어(oil-immsered) 간격이 없이 딱 붙어 있다는 것이다. 대칭형 렌즈는 가공하기가 쉽고, 또 오일을 워넣음으로써 안쪽 면에 약간의 흠이 있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시 아스트로피직스는 6인치 APO 굴절 망원경을 경쟁 업체의 절반도 안되는 파격적인 가격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요즘은 아스트로피직스 망원경도 가격이 많이 올라서 이런 장점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다카하시에서도 오래전부터 3매 구성의 플로라이트 망원경을 만들었다. 다카하시의 FCT 시리즈는 일본 아마추어들 사이에선 가히 꿈의 망원경이라고 할만큼 뛰어난 망원경이었다. 물론 그에 걸맞게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 같은 구경의 FS 시리즈의 두세배 가격이니 웬만한 사람들은 꿈을 꾸지 못할 지경이다.

최근 아스트로피직스에 도전장을 내민 독일의 TMB 망원경이 있다. 이 망원경은 미국의 렌즈디자이너인 토머스 백(Thomas M. Back)이 설계하고 렌즈 가공은 러시아에서, 경통의 제작 및 판매는 독일의 APM 에서 하는 다국적 망원경인데, 아스트로피직스와 거의 비슷한 가격이면서 비슷한 성능을 내서 인기가 있다. 이 망원경은 3매 중 하나에 SD(Super ED) 소재를 사용했으며 오일을 채우는 대신 렌즈 사이를 약간 띄우는 전통적인 air spaced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해외 사용자들의 리뷰에 따르면 아스트로피직스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한다.

 

여러가지 APO 설계방식

아포크로매트 망원경은 안시관측에도 사용되지만 천체사진 촬영에 많이 쓰인다. 그런데 사진촬영용 아포 망원경들은 상당수가 대물렌즈 뒷쪽의 경통 내부에 별도의 보정 렌즈를 채용하고 있다.

펜탁스의 SDHF 시리즈는 2군 2매 구성의 대물렌즈 중 한 장에 SD 소재를 사용하고 있으며, 경통 후방에 필드 플래트너 역할을 하는 보정 렌즈 1매가 들어 있어 전체적으로 3군 3매이다. 한편 동사의 사진촬영용 망원경의 원조격인 100SDUF는 F4 의 극단적인 단초점으로서, 대물렌즈는 2군 2매, 플래트너가 2군 2매인 구성이다. 한편 펜탁스에서 최근에 나온 SDP 시리즈는 역시 플래트너가 2군 2매이나 그 중 한 장에 ED 렌즈를 사용하였다. 비록 대물렌즈는 2매 구성이지만 3매 못지 않게 안시관측 성능도 뛰어나다고 한다.

다카하시 FSQ106 도 거의 비슷한 구성으로서, 대물렌즈는 2군 2매, 플래트너가 2군 2매이며 각각 플로라이트 렌즈가 한 장씩 사용되어 있다. 예전에 사진용으로 인기가 있었던 텔레뷰 제네시스 경통도 비슷한 구조로, 대물 렌즈는 ED 가 아닌 일반 렌즈이지만 경통 내부의 플래트너가 플로라이트로 되어 있다. 경통 내부에 배치할 때는 렌즈의 직경이 작아지기 때문에 값을 싸게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 외에도 빅센 DED 108 이나 NA 시리즈, 텔레뷰 NP101 등 다수의 망원경들이 이러한 설계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처럼 대물렌즈와 별도로 경통 뒷쪽에 보정 렌즈를 추가한 형태의 설계를 펫츠팔(Petzval) 방식이라고 한다. 펫츠팔 방식에서 뒷쪽의 보정 렌즈는 주로 필드 플래트너 역할을 하지만 그 외에도 대물 렌즈가 완벽히 보정하지 못하는 각종 수차를 잡거나, 초점거리를 줄여 주는 리듀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진촬영용 굴절 망원경들은 대개 F 수가 5~7 정도로 매우 작기 때문에 수차를 효과적으로 잡기 위해서는 펫츠팔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다.

천체 사진촬영에서는 상면의 평탄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필드 플래트너는 거의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꼭 필드 플래트너를 내장할 필요는 없고, 접안부 쪽에 옵션으로 부착할 수 있다. 다카하시나 아스트로피직스, APM-TMB 망원경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망원경들은 안시/사진 겸용으로 설계되어 안시관측만 할 사람든 굳이 비싼 플래트너를 안 사도 되게 하는 것이다.

필드 플래트너가 리듀서 역할을 겸하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플래트너겸 리듀서의 대표적인 예는 보그의 슈퍼 리듀서일 것이다. 보그 100ED 와 125ED 망원경 시리즈 (115파이 경통)들은 원래 F6.4 이지만 슈퍼 리듀서를 사용하면 F4 가 된다. 보그 대물렌즈는 2군 2매의 ED 세미아포이지만 슈퍼 리듀서가 4군 4매로 전체적으로는 6군 6매가 된다.

한편 다카하시에서 비교적 최근에 나온 SKY-90 같은 경우는 대물렌즈는 2매이지만 F수가 5.6 으로 상당히 작다. 작은 F 수 때문에 발생하는 수차를 잡기 위해 SKY-90 은 대물 렌즈를 이루는 두 장의 렌즈를 멀리 떨어뜨렸다. (wide spaced 설계방식)이 설계방식은 색수차를 상당히 감소시킬 수 있으나 주변상은 좀 나빠진다고 한다.

본 게시물은 과거 Starryland에 올라왔던 이준희님께서 2003년 1월 20일에 올리셨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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