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굴절망원경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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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타임즈 승인 2018.01.28 02:03 | 최종 수정 2018.05.30 13:45 의견 1

 

TMB 105/640 APO 굴절

최근에 고급 굴절 망원경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아스트로피직스나 TMB, 다카하시, 펜탁스라는 이름은 고급 망원경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눈이 튀어나오게 비싼 가격도 불구하고 꾸준히 팔리고 있다. 덩달아 많은 사람들이 굴절 망원경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굴절 망원경의 광학성능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필자는 광학에 조예가 있는 것도, 망원경 제작에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망원경에 관심이 있어 여러가지 자료를 수집한 것 뿐이다. 주로 "Telescope Optics "와 "사진 렌즈 " 책을 참고하였고, 예전에 조상호 씨가 월간하늘에 쓴 탁월한 기사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이 기사는 조상호 씨의 홈 페이지에 올라가 있었는데 그 홈페이지가 개편되면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자리를 빌어 조상호 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 글이 망원경 성능에 대한 정보에 갈증을 느끼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렌즈 구성 용어

망원경의 대물 렌즈 형식에 대하여 1군 2매라든지, 2군 4매와 같은말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매(element)는 대물 렌즈를 구성하는 개개의 렌즈를 말하고, 군(group)은 개개의 렌즈가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을 하나로 봤을 때 그 묶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1군 2매라하면 렌즈 두 장이 붙어서 하나의 대물 렌즈를 만든 것이고, 2군 4매라고 하면 렌즈 수는 총 4개이고 그것을 두 개로 무리지은 것인데, 1매 - 3매 이든가 2매 - 2매로 구성된 것이다.

 여기서 렌즈라고 하면 두 가지 뜻이 될 수 있다. 하나는 대물렌즈를 구성하는 개개의 유리알 - 볼록렌즈나 오목렌즈 - 을 가리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유리알들이 모여서 된 전체로서의 렌즈일 수도 있다. 영어로는 element 와 lens 로 구분이 되지만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참 난감하다. 그러나 글을 읽다 보면 문맥상으로 어느 정도 파악이 될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렌즈 ' 란 말을 두 가지 뜻으로 쓰고 굳이 구별이 필요할 때는 '전체 렌즈 ' 와 '개개의 렌즈 ' 라는 말로 구분하도록 하겠다.

보통 카메라 렌즈 같은 경우는 여러가지 수차를 보정하기 위하여 렌즈의 매수가 매우 많다. 간단한 단 렌즈라도 4군 5매 정도는 기본이고, 고급 줌 렌즈 같은 경우는 13군 16매 이런 아주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다. 렌즈의 매수가 많을수록 각종 수차 보정이 용이하기 때문에 성능면에서 좋다고 할 수 있으나, 반면에 가격이 비싸지고 무게가 무거워지며, 빛 투과율이 떨어지며 개개 렌즈면에서의 반사 때문에 콘트라스트도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굴절식 천체망원경의 경우는 대부분이 1군 2매 내지 1군 3매의 간단한 구성이고, 사진촬영용 굴절 망원경의 경우라도 6군 6매 정도가 가장 복잡한 구성이라고할 수 있다.

 

광학 유리의 규격과 품명

보통 우리는 쌍안경의 프리즘이 BK7로 만들었느니, BaK4로 만들었느니, 굴절 망원경의 대물 렌즈가 FK52로 만들었느니 FCD1으로 만들었느니 하는말을 듣는다. 이런 요상한 기호들은 바로 광학 유리의 품명이다. 여기선 광학 유리의 규격에 대해 좀 알아보기로 하자.

렌즈를 만드는 데 쓰이는 유리는 일반 유리보다 순도가 높고 특성이 일정한 광학 유리(optical glass)이다. 이 광학 유리는 일정한 규격에 따라서 만들어지는데, 그 규격을 정하는 두 가지 숫자가 바로 굴절률(refractive index)과 분산 계수(dispersion number)이다.

굴절률은 그 유리를 통과할 때 빛이 얼마나 꺾이느냐를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보통 광학 유리들의 굴절률은 1.4에서 1.9사이이다. 그런데 같은 광학유리를 통과하더라도 빛의 파장에 따라 굴절률이 달라진다. 대개 파장이 짧은 보라색과 청색 빛이 더 많이 꺾이고, 파장이 긴 적색 빛은 덜 꺾인다.

이렇게 파장에 따라 굴절률의 차이가 나는 현상을 분산(dispersion)이라 하고, 광학 유리에서 분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숫자가 바로 분산계수이다.  분산 계수는 흔히 아베 수(Abbe number)라고 불리는데,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여기서 nd, nF, nC 는 각각 그 광학 유리의 녹색, 청색, 적색광 파장에서의 굴절률이다. 아베 수가 높을 수록 분산이 작은 광학 유리이다. 광학 유리 중에서 아베 수가 50보다 작은 것을 플린트(flint)유리라 하고, 그보다 큰 것을 크라운(crown)유리라 한다.

첨언하자면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는 독일 칼 짜이스 사의 유명한 광학자로서, 각종 광학 유리의 특성을 연구하여 분산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였다. 광학 산업에서 아베의 공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전에는 도대체 어떤 유리를 써야 렌즈의 성능이 좋아지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여러가지 재료를 가지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주먹구구식으로 렌즈를 만들었던 것이다. 아베의 연구 덕택에 비로소 광학이 제대로 된 이론으로 정립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거나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광학 유리의 규격이 정해져서 표준화가 되어 있다. BK7, BaK4 같은 것은 광학 유리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미국쇼트(Schott)사의 품명인데, 다른 회사에서도 유리를 만들지만 워낙 쇼트 사의 유리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이 회사의 품명이 거의 표준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렌즈 설계시에는 이 품명보다는 여섯자리의 숫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 숫자는 그 유리의 녹색광에서의 굴절률과 분산계수를 세자리씩 조합하여 나타낸다. 가령 흔히 쓰이는 광학 유리인 BK7은 517642로 나타내는데, 이는 녹색광에서의 굴절률이 1.517이고 아베 수가 64.2임을 나타낸다.  

 

ED 소재와 SD 소재

앞에서 말했듯이, 아베 수가 높을수록 분산이 작다. 분산이 작다는 것은 청색과 적색에 대한 굴절률의 차이가 작다는 것이므로 이런 유리로 렌즈를 만들면 색수차가 작아진다. 분산이 매우 작은 유리를 초저분산(ED; extra-low dispersion)유리라 하는데, 보통 ED 유리라 하면 아베 수가 80 이상 되는 것은 통칭하여 가리킨다.

아베 수가 90보다 더 큰 유리를 SD(super-low dispersion)유리라고 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것은 광학 이론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그보단 일본의 일부 업체, 특히 펜탁스의 굴절 망원경에서 사용하는 유리의 상품명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요즘은 다른 업체에서도 SD란 말을 제품명이나 광고에 많이 쓰는데, 사실 정확한 광학 유리의 품명을 밝히지 않는 이상 좋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 알 방법이 없다. SD 외에도 카메라 렌즈 업체나 이런 데서 UD니 LD니 하는 요상한 상품명을 들고 나오는 일이 많은데 특별히 ED 와 다른 것이 아니고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 렌즈의 소재로 쓰이는 물질 중 가장 분산이 작은 것은 플로라이트(fluorite), 즉 형석이다. 형석은 불화칼슘(CaF2) 의 결정체인데,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은 불순물이 많아서 광학 유리로 쓰기는 어려우므로 녹여서 정제한 다음 인공적으로 결정을 생성시켜서 쓴다. 이 형석은 유리는 아니지만 특성 숫자가 434954로 아베 수가 95가 넘으며, 어떤 광학 유리보다도 더 뛰어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성능에 걸맞게 가격도 비싸서 플로라이트 소재의 망원경이나 카메라 렌즈는 엄청나게 비싸다. 보통 ED 소재는 일반 광학유리의 10배, 플로라이트 소재는 20배 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ED나 플로라이트는 또한 일반 광학 유리에 비해서 재질이 무르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렌즈를 깎을 때 흠이 나기 쉬워서 정밀하게 연마하기가 힘들며, 충격이나 습기에도 약하다. 또 코팅하기도 힘들다. 그나마 현미경처럼 렌즈 구경이 작은 것은 비교적 가공이 쉽지만 망원경 대물렌즈로 쓸만큼 크게 만들려면 무척 힘들어서 대구경으로 만들기가 어렵다. 플로라이트 소재의 대물렌즈는 대개 10인치(250mm)가 한계라고 한다.

본 게시물은 과거 Starryland에 올라왔던 이준희님께서 2003년 1월 6일에 올리셨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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