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굴절망원경 이야기 (4)

스페이스타임즈 승인 2018.01.28 02:18 | 최종 수정 2018.05.30 13:44 의견 0

APO 망원경의 가치

아포크로매틱 망원경은 비싸다. 쓸만한 100mm 아크로매틱 굴절 경통이 50~80만원 정도인데 비해 100mm ED 경통은 200만원, SD 나 플로라이트 경통은 400만원에서 500만원을 홋가한다.  구경이 커질수록 그 격차는 더욱 심해져서 150mm 아크로매틱 경통이 100~150만원 정도 하는데 비해 150mm 아포는 1000만원을 훌쩍 뛰어넘고 심한 것은 경통만 3000만원을 홋가하는 것도 있다. 과연 이렇게 비싼 APO 망원경이 제값을 하는가? 이 점에 대해선 아마추어들 사이에 찬반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좌측부터) Takahashi FS128, TMB 152/1200, TEC APO140, AP 130EDT

우선 딥스카이 관측에 한해서는 굴절 망원경은 대구경 돕소니안이나 슈미트 카세그레인을 절대로 쫓아갈 수 없다. SD 나 플로라이트급의 4인치 APO 굴절 망원경과 그것을 올릴 적도의 가대를 살 돈이면 15인치 트러스 돕소니안이나 10인치 슈미트 카세그레인 망원경을 충분히 살 수 있다. 딥스카이에서 4인치와 10인치, 4인치와 15인치의 비교는 한마디로 의미가 없는 이야기다. 쉽게 말해 유치원 꼬마와 대학생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행성이나 이중성 분야는 어떨까? 이 분야는 전통적으로 굴절이 강세를 보이는 분야이다. 실제로 4인치 플로라이트급의 고급 굴절로 본 목성이나 토성상은 허접한 8인치나 10인치 반사나 슈미트 카세그레인보다 좋아 보인다. 그러나 반사나 슈미트 카세그레인이 굴절 정도로 고급이라면? 다카하시 MT 시리즈나 뮤론 시리즈, 아스트로피직스의 10인치 막스토프 같은 고급 반사 광학계는 같은 구경의 굴절보다는 못하다 하더라도 한두등급 낮은 굴절은 쉽게 능가한다. 가령 다카하시 MT-200 같은 고급 8인치 반사라면 6인치 APO 굴절 정도의 성능은 나온다는 이야기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반사나 슈미트 카세그레인 계통의 광학계들이 하도 엉터리들이 많아서 그렇지, 제대로 된 반사망원경은 절대 굴절망원경에 성능이 뒤지지 않는다. 일단 색수차 문제는 전혀 없고, 구면수차도 뉴턴식 반사망원경의 미러가 완벽한 포물면이라면 이론상으로 상의 중심부에선 구면수차가 0 이므로 그보다 더 뛰어난 광학계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주변에 그렇게 정밀한 광학계를 가진 반사가 드물고, 또 대부분의 반사망원경들이 광축이 틀어진 채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반사망원경은 상이 후지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을 뿐이다.

심지어는 아크로매트 망원경도 행성관측에 훌륭히 쓰일 수 있다. 외국에는 5인치나 6인치로 f/10 에서 f/15 정도 되는 장초점 아크로매트 망원경이 꽤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물론 색수차가 있기는 하지만, 전문적인 행성 관측자라면 대부분의 관측 시간을 색필터를 끼우고 관측을 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색수차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구면수차가 얼마나 잘 보정되었냐가 중요하다.

천체사진 촬영에서는 어떨까? 이 분야에서는 APO 굴절 망원경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걸쳐 APO 망원경의 붐을 가져온 데는 천체사진 분야의 공로가 크다. 아스트로피직스 망원경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토니 할라스 부부가 이 회사의 6인치 굴절과 펜탁스 67 카메라로 엄청난 천체사진을 발표하면서 부터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아도 반사망원경으로 제대로 된 천체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천체사진 좀 찍네 하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APO 굴절 망원경을 쓰고 있다.

천체사진에 굴절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최근의 굴절망원경이 이미지 서클이 매우 커서 67판과 같은 큰 필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뉴턴식 반사나 카세그레인 경통 중에서 67 필름을 커버하려면 10인치 이상의 대구경에서나 가능한 반면 굴절은 4인치도 흔하다. 다른 하나는 굴절 망원경이 가볍고 콤팩트해서 가대에 부담을 덜 주기 때문이다. 보통 사진촬영을 할만한 반사 경통이면 엄청 크고 무겁다. 가장 가벼운 빅센 R200SS 라 해도 촬영용 악세사리 달면 8kg 을 넘는다. GPD 나 EM-10 같이 탑재 중량이 작은 가대를 가진 사람은 굴절을 찾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추세 역시 변하고 있다. 단초점 굴절에 67 카메라를 달아서 찍은 사진은 화려하고 멋있기는 하지만 초점거리가 너무 짧아 찍을만한 대상이 아주 제한되어 있다. 대구경 장초점 반사망원경으로 장시간 노출을 하여 작은 은하를 찍는 것은 굴절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분야이다. 또한 CCD 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이미지 서클이 더이상 문제가 안 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앞으로도 한동안은 천체사진 분야에서 APO 굴절의 강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APO 굴절의 매력은 단순히 성능만으로 따질 수는 없다. 천체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도, 행성관측에 목숨걸지 않은 사람도 APO 굴절을 많이 산다. 이것은 APO 굴절이 대체로 값이 비싸며,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급품에 속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워낙에 ED 나 플로라이트 소재가 비싼 탓에 APO 망원경은 싸게 하려고 해도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왕 비싸게 갈 바엔 렌즈 연마나 코팅도 정밀하게 하고 각종 기계적인 부분도 꼼꼼하고 튼튼하게 만드니 고급품이 될 수 밖에 없다. 

APO 굴절을 사는 사람들은 단지 성능 좋은 망원경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명품을 산다고 봐야 한다. 백화점에서 한 장에 50만원 하는 에르메스 스카프, 한켤레에 100만원 하는 페라가모 구두를 사는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사치를 즐기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짧지 않은 분량으로 주절주절 말을 했지만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더 많은 정보를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기회가 있으면 더 공부를 해서 구면색수차나 광학 정밀도 테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참고로 망원경 광학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음 책들을 읽어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김성호, "사진 렌즈 ", 전파과학사 
H. Ruten & M. van Venrooij, "Telescope Optics ", Willmann-Bell, Inc. 
H. R. Suiter, "Star Testing Astronomical Telescopes ", Willmann-Bell, Inc. 

 

본 게시물은 과거 Starryland에 올라왔던 이준희님께서 2003년 1월 29일에 올리셨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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