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한 십년 동안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밤하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2년의 금성 일면통과가 그나마 기억나는 현상 같고, 헤일밥 혜성 이후로 혜성다운 혜성은 오지 않고, 우리 은하속에서 초신성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구요.
갑자기 뭔소리냐 하면, 11월하면 사자자리 유성우를 잊지 못해서입니다. 어느 장소만 가면 불현듯 옛사랑이 심장에 바늘처럼 들어오는 것처럼, 매년 11월이 오면 사자자리 유성우가 생각나곤 합니다. 2001년 11월 19일 강원도 산꼭대기에서 봤던 그 유성우는 정말 평생에 잊기 힘든 장관이었는데요, 이건 2032~33년 정도 되야 다시 돌아올 것 같습니다. (저희 스페이스타임즈는 그때까지도 근근히 잘 버티고 있겠습니다!) 너무 옛날 자료이긴 하지만 동영상으로 남겨진 얼마 안되는 기록 중 하나를 아래 남깁니다.
이번 달 초순에 황소자리 유성우가 있긴 합니다만, 전천카메라를 이용한 자동관측을 하면 모를까 시간내서 볼만한 이벤트는 못됩니다.
변광성 미라
그렇게 드라마틱한 일은 아니지만, 고래자리의 변광성의 “미라”가 이번달에 가장 눈여겨볼 현상 같습니다. 이 별은 약 332일을 주기로 2~10등급으로 변하는 장주기 변광성입니다. 지금 사람들이야 아, 이게 밝기가 변하는구나 하겠지만 이 별이 주기를 갖고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낸 것은 1596년으로 케플러의 친구였던 데이비드 파브리시우스(David Fabricius)라는 목사이자 천문학자였습니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바로 직전의 사람이므로 안시관측에만 의존했기에 처음에는 신성(밝아졌다가 점차 어두워져서 안보이는)으로 생각했지만 얼마 후 다시 관측이 되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이 별은 변광성이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1662년 요하네스 헤벨리우스는 고래자리 오미크론별인 이 별의 이름을 미라라고 지은 사람입니다.
밝기가 변하는 별은 두개의 별이 쌍성계를 이루면서 서로 돌면서 식현상을 일으켜서 발생하거나 (식변광성) 또는 별이 스스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맥동현상을 일으키기 때문(맥동변광성)입니다. 만약 태양이 맥동형 변광성이라면 지구 자전축 꺾인 것에 추가하여 계절이 생기는 또다른 요소가 되었겠지요. 미라는 이 두가지 현상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것(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추측)으로 예상되는 변광성으로 그 밝기 변화가 드라마틱한 관계로 안시 관측가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고, 맨눈으로 볼 때 어떤 해에는 있고 어떤 해에는 없기 때문에 기억에 남겨두기 좋은 대상이 됩니다.
뭐 예를 들어서, 네가 태어난 그해 가을엔 미라가 눈으로 보이지 않았지… 정도? 제가 고1때 목성이 땅꾼자리에 있었는데, 첫 애가 태어났을 때도 목성이 땅꾼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소리를 종종 합니다. 적당히 이해해주시길… ㅎㅎ
이달의 천체관측 기초 개념 “시상, 씨잉(Seeing)”
반짝반짝 작은 별… 반짝거리는 별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별이 반짝거리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시민천문대나 국립과학관에 가면 천체투영관(Planetarium)이라고 하여 의자를 뒤로 기울여서 반구형의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면 거기에 가상의 별을 투영시켜주는 일종의 극장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렌즈를 통과한 빛 하나하나가 스크린에 맺히게 하는 장치를 이용하여 가상의 밤하늘을 구현하였습니다. 이를 광학식 플라네타리움이라고 하는데, 이런 방식의 천체투영관에서 별을 보면 별들이 쨍하니 떠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어딘가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별이 깜빡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우주에 가보진 못해서 직접 본건 아니지만, 거기선 별이 반짝거리지 않습니다. 대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허블우주망원경의 활약이 대단한 것입니다. 우주에 망원경을 띄우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시광선 영역 관측에 있어서는 대기의 영향을 피하기 위한 것이 가장 크다 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나 광고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00mm 정도 되는 굴절망원경은 광학적으로 완벽에 가깝다면 약 1.16아크초의 해상도를 갖습니다. 1m 망원경이라면 0.12아크초, 2.5m 망원경은 0.05아크초가 됩니다. (360도(degree)를 60으로 나누면 21,600아크분(arcmin)이 되고 또 60으로 나누면 1,296,000초(arcsec)가 됩니다.)
망원경의 해상도는 직경에 비례하는데, 구경이 커지면 자세한 관측이 가능해지는 것이 바로 이 이유입니다. 하지만 대기를 통과한 빛 자체가 뭉개져서 들어오면 아무리 분해능이 좋은 망원경이라 할지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상에서는 잘해야 0.5~1.0초의 분해능으로 관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칠레의 라스 깜빠나스 같은 곳에서는 0.2초까지 측정된 적이 있다고는 합니다.)
고인 물속의 돌은 가만히 있는데 반해 흐르는 물속의 돌은 일렁이면서 보이는 것처럼, 아무리 눈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흐르는 속에 있는 시력검안표는 제대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아래 그래픽과 그 아래 GIF 파일은 실제로 관측을 할 때 별이 찌그러지는 원리를 보여줍니다. 파동의 형태로 전달되는 별빛이 대기를 통과하면서 실시간으로 찌그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짝이는 별은 천문학자들에게는 큰 골칫거리입니다. 현대의 기술은 “적응광학”이라고 하여 대기에 의해 찌그러진 별빛을 구성하는 파(파면, Wavefront)를 거울 등을 이용하여 다시 반대로 펴는 방식(마치 노이즈 캔슬링처럼)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1950년대에 이러한 기술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본격적인 적용은 컴퓨터가 보편화된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칠레에 있는 유럽남방천문대의 VLT 망원경(8.2m망원경 4개로 구성) 중 하나에 4개의 레이저를 이용한 가상 별을 만들어 그 빛을 분석하여 별빛의 흔들림을 잡아주는 적응광학 시스템을 운영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입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그 아래의 Youtube 영상을 참고하세요.
아래 사진은 VLT에 적응광학을 이용하여 촬영한 영상의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SO에서 사용한 적응광학은 1초에 1000번의 대기 흔들림을 포착하여 이를 상쇄한다고 합니다. 현재 아마추어들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적응광학 카메라들이 출시되고 있으며 수십년 이내로 이 기술은 상당히 대중화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동안 천문학자가 아닌, 아마추어들이 촬영한 천체사진에 있어 가장 큰 혁신은 필름에서 CCD로 넘어가면서 나타났는데, 그 다음 혁신은 이 적응광학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다음은 아마도 광학 간섭계 망원경쯤 되지 않을까…)
적응광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경제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대기의 효과가 없는 망원경인 허블우주망원경이 운영비를 빼고 발사시까지 들어간 비용이 26억 달러입니다. 이게 1978년 승인되서 설계 5년, 제작 2년걸렸고 챌린저 참사로 발사가 지연되다가 80년에 발사될 때까지의 비용인데,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런데, 8.4m 거울을 7장 모아서 25.4m의 단일 거울처럼 사용하게 될 거대마젤란(GMT) 망원경에 투자될 예산이 지금은 좀 변했겠지만 7억 달러입니다. 미국 소비자물가상승율을 반영하여 1980년의 26억 달러를 GMT 건설이 시작된 2015년 가치로 환산하면 약 80억 달러가 됩니다. 즉 구경은 1/10인데, 예산은 11배가 소요된 것이죠.
자,이제 다시 우리의 세상으로 돌아와서 시상, 씨잉을 살펴보죠. 아, 씨잉이란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시상이란 말 못지않게 씨잉이라고도 많이 말합니다.
위 그림처럼 씨잉을 10단계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망원경을 통해 관측을 해봐야 감이 오는데요, 실제로 좋은 굴절망원경을 사용하면 저 GIF 파일 중 가장 이쁘게 보이는 모습처럼 교과서처럼 회절된 별빛이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방법을 쓰려면 어느정도 밝은 항성(2등급 정도)을 좋은 망원경으로 100배 이상에서 관측하면서 판단해야 합니다. 이 방법은 William Henry Pickering(1858-1938)이라는 분이 제안을 했습니다. 이 피커링 씨잉 스케일은 저분 살아 계실 당시의 얘기이지만 지금도 맨눈으로 별보는 것을 즐기는 아마추어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느껴지는 모습을 느끼기에는 가장 좋은 자료입니다. 요즘에는 당연히 CCD 관측을 통해 객관적으로 씨잉을 측정합니다. 전문적으로 씨잉을 모니터링하는 장비도 출시되고 있습니다.
그럼 씨잉이 좋은 날에는 별이 어떻게 보일까요? 당연히 반짝거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지구적으로 볼 때 기류가 그다지 안정된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날들이 좋지 않습니다. 다만 미세먼지가 많이 끼는 날처럼 공기가 안정된 날, 지상에서는 알 수 없지만 고층 대기 역시 매우 얌전한 날, 그런 날엔 유난히 별이 흔들리지 않고 보이게 됩니다. 그날이 바로 씨잉이 좋은 날입니다.
씨잉이 좋을 때 관측을 해보면 별이 정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특히 고배율관측을 많이 하는 행성관측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데요. 씨잉이 심하게 안 좋은 날에는 아래 사진처럼 초점이 맞았다 안맞았다 할 정도가 되므로,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별이 이상하게 멈춰 서있다 싶은 축복받은 날을 만난다면 집에 도착하는 대로 바로 망원경을 꺼내서 행성을 관측하시면 됩니다!
11월 29일, 서울 기준 시민박명 시간은 17시 43분입니다. 약간 어두운 기운이 느껴질 때 서쪽하늘을 보면 실처럼 가느다란 달을 중심으로 아래쪽엔 금성, 위쪽에는 토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날 달은 그림자부분이 붉게 보이는 지구조가 보일 것입니다.
지구조는 영어로 Earthlight, Earthshine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지구로 인해 빛나는 달그림자를 뜻합니다. 어떤 면에 들어간 빛이 얼만큼 반사되어 나간지에 대한 비율을 알베도(Albedo)라고 하는데요, 지구가 태양빛을 받아 반사시킨 알베도로 인해 달의 그림자 부분이 밝게 빛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아래 사진은 ISS에서 촬영한 것이지만 이 현상은 초승달이나 그믐달 무렵에 지구상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태양빛을 받아 매우 밝아진 지구가 그 빛을 달에 전달한 것이 다시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이지요. (당구로치면 3쿠션?) 따라서 만약 이 지구조가 보일 때 달에서 지구를 관측한다면 흡사 보름지구(?)에 가깝게 보일겁니다.
달이 가늘면 가늘수록 더욱 지구조가 도드라지게 보입니다. 밤이 긴 겨울이 될수록 가느다란 달을 보기 좋은데요. 스마트폰으로도 잘 찍히니까 한번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무실에서 올림픽공원을 돌아 잠실대교와 청담대교 사이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조깅을 한 주에 두어 번 하고 있는데요. 지난주 토요일 밤, 한강물 바로 옆 어두컴컴한 곳에서 누군가 둘이서 나무로 된 무언가를 갖고 씨름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통사람들이 볼 땐 저게 뭔가 하겠지만, 저는 그게 망원경이란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날 꽤 쌀쌀해서 반환점을 돌아왔을 때도 그들이 있으면 참견을 하리라 하고 돌아오는데 여전히 씨름을 하고 있길래 내려가서 말을 걸었죠. 인근 고등학교의 학생들이었고, 선배들이 만든 망원경을 그대로 따라서 만든건데 뭔가를 잘 못찾겠다며 도와 달라고 하더군요.
요즘에도 이런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반가웠고, 회사로 찾아오라고 했더니 그 다음 월요일에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스페이스타임즈는 그 학생들에게 망원경에 대해 알려주고 학생들이 만들었던 그 망원경을 다시 제대로 된 망원경으로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망원경으로 최종적으로 사람들에게 별을 보여주는 장면을 4회 정도에 걸쳐서 포스팅해볼 계획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