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낚기… 별 낚기…
2002. 8. 11. 김세현
요즘 비가 많이 왔습니다...
별 보는 사람들에게 쥐약인 계절답게 벌써 두어달 정도나 장비를 쉬게하고 있습니다...
어젠 오랫만에 장비를 뒤적여 보았는데 넣어둔 방습제가 축축해진걸 보니 요즘 비가 오긴 꽤 왔나봅니다...
별보는 취미가 아무래도 돈과 시간을 잡아먹는 취미이다 보니 열심히 일하는 분들.. 특히 농촌에서 일하시는 분들 옆에두고 장비 싣고 휙휙 먼지 휘날리며 다니면 양심에 많이 찔리기도 했지요...
이태전인가는 봄 가뭄이 심해서 자주 관측을 다닌적이 있었지요..
주말마다 왜그리 날이 좋은지.. 그러면서도 주말에 또 날씨가 맑기를 바라곤 했는데.. 그때 농촌에선 가뭄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날이 좋기를 기대하면서도 양심에 찔렸는데.. 요즘은 하도 비가 많이와서 비그치고 날 맑기를 바라는 심정은 농촌일하는 사람이나 별 보는 사람이나 똑 같아 졌네요...
이제 비 많이 오는 시즌도 끝나가는것 같으니.. 오랫만에 좌판 벌려볼 기대에 가슴이 설렙니다...
별보는 취미를 꽤 오랫동안 가지고 이것 저것 하다가 보니 요즘은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 경우를 한번 적어보면...
먼저 관측지에 도착하면 하늘 한번 빙 둘러보고 서둘러서 장비를 셋팅합니다...
그리고 간이 의자를 꺼내 앉습니다...
보온병에 가지고 온 아주 연한 멀건 커피를 종이 컵에 따라 손에 잡고는 의자에 기댑니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
별이 아니라 세월이 보이게 됩니다...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회사일로 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못본 친구들..
몸이 좋지 않아 병석에 누우신 어머니.. 돌아가신 아버님의 고단한 옛 모습..
학교 다닐 때 기억.. 소년기때 매일같이 지고 다녔던 우주에 대한 호기심.. 그 때 본 하늘에 대한 기억들.. 툇마루에서 별보며 잠들던 어머니의 무릎...
그리고는 많은 세월에 대한 여러가지 감상들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한 덩어리로
가슴속에서 돌아다닙니다...
그리고는 살아갈 일에 대해서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되지요...
저 같은 경우 이렇게 한 두시간을 보냅니다...
이 한 두시간은 제가 별을 보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 시간이 지나면 별을 봅니다... 행성도 보고.. Deep sky 도 찾습니다...
사진도 찍습니다... 일주도 찍고 .. 별자리도 찍고 .. 가끔은 Deep sky도 찍습니다...
더러는 소주도 한잔 하지요...
가지고 간 커피에 소주나.. 아니면 싸구려 위스키를 한 두방울 떨어뜨려 마시면 목에서 부터 위장으로해서 머리끝으로 진한 감동이 오지요..^^ .. 특히 겨울에 그렇습니다..
별보러 가서는 이것 저것 하는 것이 많다 보니 실제로 제대로 하는 것은 없더군요..
사실 특정한 한 분야를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구요...
그저 캄캄하고 조용한 외진 관측지에서 편안하게 밤을 보내는 그 자체가 제게 있어서는 별 보는 취미의 가장 큰 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꾼들의 대화는 주로 장비에 많이 있더군요...
물론 장비도 재미를 많이 줍니다...
내 장비가 남의 장비보다 나으면 괜히 안심이 되고.. 남이 없는 액세서리 가지고있으면 자랑하고 싶고..
혹 초보자가 옆에 있으면 별자리 이것 저것을 일러주면서 느끼는 즐거운 현학들...
렌즈의 다양한 광학이나 깊은 하늘의 숨은 쥐구멍까지 찾고.. 찍고.. 그리고...
적도의의 다양한 기계적 성능 등을 모두다 꿰뚫고 있으면서 관측할 때의 여러 장비의 수준을 정의해주고...
이것들도 별보는 즐거움의 한 분야입니다... 다른 취미의 분야에서도 모두 비슷하지요..
하지만 취미가 안정되고나서.. 자기에게 즐거운 분야가 서서히 굳어지게 된다면 정말 별 보는데 있어서 장비란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군요...
사람마다 다소간의 차이는 분명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저 같은 경우 라면 소구경 ED 굴절에 그저 피기백 촬영 가능할 정도의 소형 적도의.. 35 mm 수동카메라 한 대만 있으면 대충 90 % 는 커버가 되는 군요...
처음 시작할때의 별에 대한 호기심...
물론 여기엔 과학과 낭만, 신화, 미지에 대한 호기심.. 등등 여러가지가 뭉뚱그려져 있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호기심이 원래 자기 것이 아닐까요..?
장비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수단에 불과한.. 그래서 우리 꾼들이 지금 다루는 비중보다는
훨씬 낮은 가치를 쳐 줘야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별 보는데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수단은 바로 나의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눈과 연결된... 내가 대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관계된...
나의 삶과 시간을 느끼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별 보러가면 멍석 하나를 바닥에 펼쳐 놓으시고 그곳에 누워 밤 하늘을 한번 보십시요..
별자리 전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아마 망원경으로 밤새 보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밤하늘과 약간은 지루하면서도
조금 졸리는 듯한 유년기의 아름다운 호기심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별이 있는.. 또는 별을 볼 수 있는 그 장소에 밤하늘과 내가 같이 있다는
그것 자체로도 즐겁고 편안한 시간이지요.. 그리고 이건 별보는 취미에 있어서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가치있고 흥미있는.. 그래서 더욱 이 취미의 본질적인 분야가 아닌가 합니다..
말하자면 장비라는것은 별꾼들에게 있어서 본질적인 가치가 아닌 부가가치 정도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장비에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길래 잠 안오는 밤에 적어 봤습니다...
거슬리는 내용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굳이 파를 분류한다면 안시파.. 사진파.. 모임파.. 다음 정도에 오는 낭만파에 속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합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