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의 특별한 일식
1919년 5월 29일, 아프리카 근처의 프린시페 섬(Príncipe)에서는 일단의 무리가 긴장감 넘치는 표정으로 하늘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날 밤에 찍어놓은 하늘사진건판을 번갈아 쳐다보며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서 스탠리 에딩턴 경(Sir Arthur Stanley Eddington, 1882년 12월 ~ 1944년 11월)이 이끄는 탐험대였다. 아서 에딩턴의 탐험대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1차 세계대전 직후 일식을 찾아 영국을 떠나 먼 여행을 떠났다.
1919년 5월 29일 일어난 일식보다 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자연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전 200년 동안 세상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날 이후 그 자리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차지하고 있으며, 그 지위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년 3월 ~ 1955년 4월)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과 함께 자연 법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물리학자를 비롯한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단 하나의 과학적 증거가 과학적 이론을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1919년의 일식은 역사상 유일한 순간이었다. 세계 전역의 과학자들과 일반대중을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끌어들였으며, 아인슈타인이라는 인물을 모호한 괴짜에서 국제적 유명인사로 순식간에 격상시켰다.
1915년, 한 괴짜가 발표한 새로운 세상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새로운 중력이론을 발표하였다. 그는 10년전에 발표한 특수한 상태에서의 상대성이론(특수상대성이론)에 덧붙여서 일반적인 시공간이 물질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인슈타인의 세계에서 시공간은 더 이상 고정되어 있지 않았으며, 뉴턴의 힘이라고 생각했던 중력은 단지 시공간의 굽어짐이었다. 물체는 단지 주위의 시공간을 구부리고 있었고 더 무거운 물체일수록 시공간을 더 크게 구부리고 더 큰 중력을 갖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확고히 하기 위해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문제 하나를 풀어낸다. 다른 모든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수성은 태양의 주위를 타원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태양과 가장 가까운 지점(근일점)이 규칙적으로 회전한다. 뉴턴의 완벽한 우주 시계에서 이 변화량은 정확하게 계산될 수 있었으며, 천문학자들은 그 계산량과 실제 관측량을 비교하여 미세한 차이(43초각, 1초각은 1/3600도)가 발생함을 알아내었다. 과학자들은 이 미세한 차이를 과소평가 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수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론에 적합한 궤도를 관측하는데 실패하였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사용하여 수성의 근일점 이동의 문제를 훌륭하게 풀어내었다.
인상적인 결과였지만 이로 인해 확신을 얻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과학사학자인 아칸소대학교의 다니엘 케네픽(Daniel Kennefick) 교수는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이론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고 아인슈타인이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맞게 계산을 다듬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당시 사람들의 문제”라고 평한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작성 중인 1911년 더 객관적인 실험을 제안하였다. 태양의 중력장에 의한 빛의 휘어짐 현상이 그것이다. 실제로 1801년 독일의 천문학자인 요한 게오르크 폰 솔드너(Johann Georg von Soldner, 1776년 ~ 1833년)에 의해 태양의 주변을 여행하는 빛이 태양의 중력가속도에 의해 구부려짐이 관측되었다. 그가 관측한 수치는 0.84초였다.
아인슈타인은 솔드너의 관측기록을 알지 못하였다.(여기에는 다른 의견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대성이론을 토대로 계산을 하였고 그 결과 0.83초의 휘어짐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상대성이론에 경쟁하던 다른 해석들은 태양에 의해 빛이 전혀 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이 현상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개기일식을 이용하는 방법뿐이다. 태양빛은 워낙 강해 주변의 별빛을 모두 가려버린다. 하지만 개기일식 때에는 강한 태양빛이 달에 가려지며 태양 주변의 별을 관측할 수 있다. 실제로 별빛이 태양에 의해 구부러진다면, 태양에 가까이 있는 별들은 원래 있어야 할 위치에서 벗어나 약간 다른 위치에 있는 것처럼 관측될 것이다.
이를 관측하고자 하는 시도가 브라질(1912년)과 러시아(1914년)의 일식 중에 있었다. 하지만 날씨와 전쟁으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 실패는 아인슈타인에게 행운이었다.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빛의 휘어짐에 대한 계산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완성된 이론으로 새롭게 계산된 수치는 예전 예상치의 두배인 1.75초였다.
만약 초기 일식 탐사 중 어느 것이라도 성공적이었고 일반상대성이론이 완성되기 이전에 예상치의 두배를 웃도는 관측값이 나왔다면, 과학사에서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기술되었을 지는 알 수 없다.
아서 에딩턴과 일반상대성이론
1차 세계대전 당시 왕립천문학회의 비서관직을 맡고 있던 아서 에딩턴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논문을 가장 먼저 받은 사람이었다. 설득력 있는 작가이자 연설가로 평가되는 그는 일반상대성이론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다. 하지만 영국 과학계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받아들이는데 적대적이었다. 그들에게 뉴턴의 이론은 “많은 도전자들에게 도전받는데 익숙하였고, 200년이 넘게 그 도전들을 이겨내고 실패한 적이 없는” 이론이었다.
뉴턴의 이론은 많은 도전자들에게 도전받는데 익숙하였고, 200년이 넘게 그 도전을 이겨내고 실패한 적이 없는 이론
하지만 그의 열정은 영국의 왕실천문관인 프랭크 왓슨 다이슨 경(Sir Frank Watson Dyson, 1868년 1월 ~ 1939년 5월)을 설득시켰다.
1917년 다이슨 경은 에딩턴에게 1919년 일어날 일식이 상대성이론을 실험하는 좋은 기회라고 주장하였다. 태양이 일식일 때 밝은 히아데스성단(Hyades, 황소자리)에 가까워지기 때문이었다. 이는 또한 평화주의자였던 에딩턴이 독일과의 전쟁 중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노동 수용소행을 피하기 위한 좋은 기회이기도 하였다.
1918년 11월 1차 세계대전이 끝날때까지 다이슨과 에딩턴은 일식원정대를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이슨은 원정대를 두 팀으로 나누어 에딩턴이 속한 팀은 서부 아프리카 연안의 섬인 프린시페로, 또 다른 천문학자인 앤드류 크로멜린(Andrew Claude de la Cherois Crommelin, 1865년 2월 ~ 1939년 9월)이 속한 팀은 브라질의 소브랄(Sobral)로 보냈다.
2주가 넘는 기간동안 여행하고 1달이 넘는 기간동안 장비를 점검한 끝에 일식의 시간이 다가왔다. 중요한 점은 날씨였다. 1912년 브라질에서 이루어진 탐험에서도 날씨로 인해 실패한 전적이 있었다. 브라질팀은 행운이었다. 전체적으로 맑은 하늘 아래 약 6분간 개기일식이 일어났다. 하지만 에딩턴은 그리 운이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불어닥친 위협적인 폭풍우는 일식의 마지막 단계에서 다행스럽게 잦아들었다. 에딩턴은 단 몇장의 사진만을 건질 수 있었다.
에딩턴의 팀과 크로멜린팀이 그해 7월과 8월 각각 영국에 도착한 후 그들은 다이슨경과 함께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예측한 것처럼 일식 중 별빛이 구부러져 있음이 보여진 것이다.
하지만 발표 이전, 그리고 발표 이후에도 깊은 실내에서는 많은 견해가 나누어지고 있었다. 사실 발표된 결과와 달리 모순되는 증거 역시 존재하였다. 특히 크로멜린팀의 관측결과는 상대성이론보다는 뉴턴이론을 지지하였다.
그럼에도 당시 언론은 즉각 이 이야기에 매달렸다. “더 타임즈”의 다음 날 헤드라인은 “과학의 혁명, 우주의 새로운 이론, 뉴턴의 아이디어가 무너지다.(Revolution in Science; New Theory of the Universe; Newtonian Ideas Overthrown)” 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헤드라인이 전 세계 신문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4년간의 잔인한 전쟁 후 발표된 이 획기적인 뉴스는 긍정적이고 새로운 소식에 목말라하던 대중들의 열망에 불을 붙였다.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의 상징적인 지위는 확고하게 정립되었다.
과학의 혁명, 우주의 새로운 이론, 뉴턴의 아이디어가 무너지다.
그후 1세기동안 과학자들은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더 많은 실험을 진행하였다. 최근 블랙홀의 모습이 관측되며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 중력을 이해하는 기초과학의 자리를 확고히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 모든 성공의 촉매인 1919년의 일식의 결과는 종종 의문의 대상이 된다. 에딩턴이 자신이 신봉한 일반상대성이론을 위해 관측결과를 인위적으로 분석했으며 브라질 소브랄의 데이터를 파기했다는 것이다.
결국 1979년 그리니치 천문대의 주도로 다이슨과 에딩턴의 실험이 재검토되었고 에딩턴의 관측결과가 옳았다는 결론이 확인되었다. 다니엘 케네픽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에딩턴은 분석데이터를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다이슨은 원정에 찬성하기는 하였지만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회의적이었고 아마 틀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회의주의자가 상대성이론 성공에 대한 발표를 찬성하겠습니까?”
1919년 일식에 대한 에딩턴의 관측은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다. 에딩턴이 일식을 관측한 100년 후인 올해 7월 2일, 100주년을 기념하듯 남아메리카 전역에 걸친 개기일식이 일어난다. 지난 일식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일식이지만 많은 천문학자들과 관심있는 일반인들이 일찌감치 일식 티켓을 매진시키고 있다.
그것은 아인슈타인과 그의 이론을 세계의 중심으로 가져왔고, 우주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우리의 눈을 뜨게 한 일식 100주년을 기념하는 “에딩턴의 일식”이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 Sky and Telesc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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