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대여행(1) - NGC2264 눈꽃송이 성단 이야기
유주상 기자
승인
2020.02.26 11:35 | 최종 수정 2020.02.2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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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 잠시 잊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쉼표가 필요할 때, 천문대로 여행을 떠나보세요.
천문대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입춘이 지났는데 다시 겨울이 돌아왔다.
아침부터 시작된 비가 어느새 눈으로 바뀌어 밤까지 이어진다.
눈 구경하기 쉽지 않은 요즘인데 모처럼 제법 많은 눈이 쌓인다.
점점 기온은 떨어지고 매서운 추위가 적막한 1,000m 고지에 내려앉는다.
앙상했던 겨울 풍경은 어둠 속에서 조금씩 변해간다.
겨울 천문대에는 특별한 낭만이 있다.
구름이 걷히고 아침이 밝아오면 새파란 하늘에 눈부신 태양이 떠오르고
나뭇가지마다 피어난 눈꽃은 햇빛에 반사되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하나, 하나. 작은 눈 결정이 모여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어젯밤 내린 수많은 눈송이들은 모두 같은 모양일까?
간혹 지상에 뿌려진 눈송이 중에 별처럼 빛나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다.
별빛을 닮은 아름다운 눈송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천문학자들은 광활한 우주 안에서 눈송이를 닮은 존재를 콕 짚어 찾아내기도 한다.
밝은 일등성들이 눈부시게 빛나는 화려한 겨울밤 별자리들 사이로
어둡고 희미해서 주목받지 못하는 외뿔소자리(monoceros)에는
“눈송이-Snowflake"라 이름 붙은 ‘NGC 2264’가 숨겨져있다.
NGC 2264는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트리”성단과 이를 둘러싼 콘 성운(cone nebula)을 모두 포함하는 천체이다. 스피처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이미지에서는 두꺼운 먼지구름 뒤에 숨어있는 별들이 마치 눈송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번져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천문학자들은 이 모습을 보며 눈꽃송이 성단(Snowflake Cluster)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겨울이면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흔하디 흔한 눈이지만
눈송이의 자세한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려앉은 눈송이는 금방 뭉쳐지고 형태가 부서진다.
자세히 보려 손을 대면 이내 녹아버린다.
천문학자들은 세상에 하얗게 뿌려진 눈송이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살펴보았다.
천문학 혁명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
1611년 눈송이에 관한 짧은 논문을 발표한다.
-《육각형 눈송이에 관하여》(Strena Seu de Nive Sexangula)
이는 눈송이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시도였다.
케플러는 눈송이가 무작위적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많은 눈송이가 왜 육각형을 띄는지 눈송이의 육방정계 구조를 연구하고 그것을 원자론의 물리적 근거로 해석했으며 나아가 구(球)를 채울 수 있는 최적의 방법에 대해서 연구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1665년 로버트 훅(Robert hooke, 1635~1703)은
현미경으로 눈송이를 관찰하고 그 스케치를 "마이크로그라피아 Micrographia"에 실었다.
같은 해에 목성의 대적점을 최초로 발견한 훅은 뉴턴과의 악연으로도 유명하지만 이론과 실험 양면으로 화학, 물리학, 천문학 등 여러 분야서 많은 업적을 남긴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였다.
천체망원경이든 현미경이든 광학기술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망원경으로 드넓은 우주를 바라보고 현미경으로 작은 세상을 탐구했다. 인류는 보이지 않는 세상과 상상만 하던 세계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갔다.
아름다운 눈송이에 빠져든 사람 중에는 미국의 윌슨 벤틀리(Wilson Bentley, 1865~1931)도 있다. 15살에 어머니로부터 받은 현미경으로 눈송이를 관찰하고 스케치하던 벤틀리는 결국 20살이 되던 1885년 눈송이 사진촬영에 최초로 성공하였고 일생동안 5,000장 이상의 눈송이 사진을 남겼다. 벤틀리는 눈송이(Snowflake)와 눈결정(Snow crystal)을 구분하였는데 눈송이를 “작고 아름다운 기적(tiny miracles of beauty)”으로, 눈결정은 “얼음 꽃(ice flowers)”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연히 벤틀리의 눈송이 사진을 본 일본의 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로(Nakaya Ukichiro, 1900~1962)는 본격적으로 눈송이 연구에 돌입한다.
벤틀리의 사진으로 다양한 형태의 눈송이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당시 구름 안에서 어떻게 다양한 형태의 눈송이가 만들어지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나카야는 1936년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눈송이를 재현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온도와 습도의 조건에 따라 눈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을 밝혀내고 “눈결정 도표”를 완성했다.
결국 눈송이(눈 결정)의 핵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먼지다.
습한 대기에 있는 미세한 물질에 달라붙은 수증기가 얼면서 눈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눈의 씨앗은 기본적인 육각형의 형태에서 대칭적이고 자기유사성을 띄는
기하학적인 형태(프랙탈 구조)로 성장한다.
그리고 지상에 도달하기까지의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수많은 패턴과 형태를 띈다.
그리고 작은 눈송이들이 쌓이고 쌓여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
눈송이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케플러와 훅, 벤틀리와 나카야가 있었다.
서로 다른 패턴으로 성장하는 눈송이처럼 사람도 각자 처한 환경과 요인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성장한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며, 하나 하나의 지식이 켜켜이 쌓여 온 세상을 덮는다. 눈처럼.
아이작 뉴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난 바닷가에 뛰어노는 작은 어린아이였다.
넓은 바다에서 단지 조개껍질 한 줌을 주웠을 뿐, 진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바다에서 더 커다란 무엇을 발견할지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지만,
이 바다에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온통 하얗게 겨울왕국이 되어버린 천문대에서
오늘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눈이 그치고 파란 하늘이 돌아오면 천문대로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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