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뉴턴과 아인슈타인 (3)

가두연 기자 승인 2018.01.29 14:33 | 최종 수정 2019.05.02 16:20 의견 0

알버트 아인슈타인 "시간과 공간에는 절대라는 단어가 없다."

서두는 이렇게 꺼내고 싶다. "나는 아인슈타인이 싫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상대성원리는 기존에 우주를 설명하던 두가지 원리에 일침을 가하게 된다. 케플러의 3법칙과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절대적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뉴턴의 운동방정식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절대적 시간" 그리고 "절대적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이것들이 절대적이지 않다고 설명한다. 상대성원리는 모두 알다시피 특수 상대성 원리와 일반 상대성 원리로 나뉘운다. 특수 상대성 원리는 빛의 특이한 현상과 시간의 지연, 공간의 수축 등과 관련된 제반 현상에 대하여 논의 하며, 일반 상대성 원리는 특수 상대성 원리에서 빠졌던 중력에 관해 논한다.

먼저 "절대적" 이라는 단어의 뜻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고등학교 다닐때 선생님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부모님 말씀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그들의 말을 우리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게 바로 "상대적"이다. 매우 황당한 비유이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는 이와 마찬가지로 황당한 발상에서 시작하였다.

 

Albert Einstein 개요

아인슈타인은 그 생애 대부분을 당대 가장 인정받은 유명 인사로 보냈다. 낯선 시민들은 그의 발길을 멈추게 했고 전 세계 사람들은 지지와 충고 그리고 협조를 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아인슈타인과 당대의 위대한 영화 배우 찰리 채플린이 캘리포니아에서 상봉했을때, 명성과 함께 동반된 사생활의 침해에 대해서 그들은 서로 공감했다고 한다. 비록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이론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인슈타인이란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1879년에 독일 울름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학업성적은 좋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수천명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불량한 학업 성적을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로 정당화 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그렇듯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 기록에 의하면 비록 당시 독일에서 유행했던 권위주의적 교육 방법에 반항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인슈타인은 우수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가 스위스 추리히의 연방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이 어려웠지만 곧 스위스 특허국에 심사원이 되었다. 그는 대학의 학문적 분위기의 이점 없이 순전히 자신의 능숙한 물리적 직관력을 발휘하여 여가 시간을 통해 4개의 연구 논문을 썼는데 이 논문들은 당시 물리학자들이 세계를 바라본 시각을 완전히 전환시켜 놓았다.

1921년 노벨상을 받게 했던 그의 논문은 미세세계에서 적용되는 의미 심장하고 수수께끼같이 경이로운 양자역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유명한것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논문으로 시공간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새로운 차원의 정교함을 가미한, 그리고 시공간과 운동의 재검토를 요하는 논문이었다.

1916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중력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각도에서 기술하였다. 1919년 일식이 진행되는 동안 태양에 의한 별빛의 휘어짐이 측정되어 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확인되자, 그는 일약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되었다.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다!"라는 것은 지금까지 뉴턴의 사고 방식을 180도 바꾸는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에서만 성립하는 것이 었고, 당시 뉴턴의 시대에서는 교회의 영향력과 신의 존재가 과학에는 너무도 큰 장벽으로 존재하였기 때문에, 신의 존재와 대립된 것, 창조(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에 위배되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런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었다.

절대적이지 않다면? 그러면 상대적이다. 그래서 상대성 이론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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